“좋아해, 프리드.”
희미한 얼굴이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긴 다갈색의 머리와 대비되는 흰 피부까지는 보이는데,얼굴은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구?”
“정말 좋아해, 프리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끔거렸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봤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웬만한 마법들도 이해하는 머리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이 통증이 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희뿌연 상대가 나에게로 다가오며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프리드.”
희뿌연 얼굴이 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귓가에 맴도는 그의 목소리 사이로, 그의 얼굴에 박힌 보라색 눈동자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를 잊지 말아줘, 프리드.”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방 풍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꿈? 꿈이었구나.’
꿈인 걸 깨달은 나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한 팔로 눈을 가렸다. 자는 사이 식은땀을 흘렸는지 온몸은 축축했고, 입에서는 거친 호흡이 흘러나왔다.
‘너는…, 누굴까.’
나는 꿈에서 만났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는 무슨 색이었는지, 눈은 무슨 색이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너는…, 누구였니.’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너에 대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다는 것은 아마도 네가 나 대신 희생했기 때문이겠지.’
검은마법사를 봉인하기 위한 제물. 원래는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거늘, 나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대신 제물이 되었다는 것. 아마도 그게 너겠지. 그렇다면 팔뚝을 적시고 있는 이 눈물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플까?’
단순히 동료를 사지로 몰았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 아니었다. 그런 감정으로 차오르는 눈물도, 몰려오는 고통도 아니었다. 이것은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도대체 너는…, 나한테 어떤 존재였니?’
아마 나는 평생 너를 떠올릴 수 없겠지. 아마 나는 평생 네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 아마 나는 평생 나에게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아마 나는 평생…,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지.
심장이 아파온다. 마치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눈물이 차올랐다. 마치 막았던 수로를 열 때처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좋아해.’
꿈에서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아해. 정말 좋아해. 나는 팔뚝 사이로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좋아해. 정말 좋아해.”
-좋아해, 나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감자 어둠이 몰려오고, 어둠은 곧 기억까지도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아아, 나는 또 잊겠구나, 너를.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의식은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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