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네.”
하늘에서 하얀 솜 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 위로 떨어지는 눈들을 감상했다.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봐왔던 관경이건만, 나날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렇게 평온하게 내리는 눈을 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는 그랬다. 어둠이 뒤덮은 세상은 계절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날씨가 바뀌었고, 매일 같이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자연현상만 일어났다. 그랬기에 지금의 순간이 너무도 평화로웠고, 새로웠다.
“…….”
나는 가만히 손 위로 떨어진 눈들을 내려 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검은 마법사가 사라지고, 평온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가장 중요한 것이 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엔, 아란, 메르세데스, 팬텀, 루미너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심장이 아려오는 탓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 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항상 이랬다. 다른 친구들을 떠올릴 때도 충분히 슬펐지만, 유난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를 떠올릴 때면 이렇게 가슴이 아파왔다.
나를 대신해서 희생한 것에 대한 죄책감일까? 그럼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는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는 지금의 현실에 심장이 울부짖는 것이었고, 좋아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작금의 현실에 심장이 찢겨나가는 것이었다.
쿵. 쿵. 쿵.
심장박동이 귀에 들려올 정도로 커졌다. 심장이 뛸 때마다 온 몸이 고통스러웠고, 추운 겨울날임에도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고통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나는 여전히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눈이 내리는 하늘은, 잿빛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나는 잿빛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해.’
과연 나는 그가 옆에 있을 때, 이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아니, 못 했을 것이다. 애초에 검은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데 실패했을 때, 봉인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옆에서 그저 웃기만 했을 테지. 이 마음은 꼭꼭 숨긴 채로, 남들에게 그러했듯이 그저 웃기만 했을 것이다. 여전히 먹구름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 눈에서 또 다시 눈물 줄기가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너를 희생시켜서, 그래놓고 기억하지도 못 해서, 그리고…,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네가 기뻐할지 난감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정말, 정말 가슴이 시려올 정도로 미안한 감정에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로 눈물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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