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너를 보면 괜히 얼굴이 빨개져. 너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 너를 보지 않으면 슬프고, 너를 보고 싶어져.
여기까지 글을 쓰던 팬텀은 그대로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하의 괴도 팬텀이 보내는 편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오글거리고 유치했다. 팬텀은 새로 종이를 꺼내들고는 다시 편지를 써내려갔다.
샌님,
…. 팬텀은 다른 종이를 꺼내서 다시 새로이 적는다.
루미너스.
루미너스. 어감이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렇게나 듣기 싫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도 정감이 가는 이름이었다. 팬텀은 앞서 썼던 ‘샌님’이라 적힌 편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고는 이어서 쓸 구절을 생각했다.
루미너스, 널 좋아해.
팬텀은 가만히 글귀를 내려 보다가 사정없이 종이를 찢어버렸다. 찢어진 종이쪼가리들은 마찬가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팬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괴도 팬텀도 한물갔네. 고작 이런 연서 내용에서 막히다니.”
웬만한 여인들한테는 그저 장미꽃을 주면서 좋아한다고 하면 끝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좋아한 이는 없었다. 장미꽃 한 송이로 감동 먹고 사랑한다 외치는 여인들은 장미꽃을 받은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닌, ‘나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대부분 속물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샌님하고는 처음부터 티격태격하던 사이인 데다가 이런 마음을 깨달은 것도 얼마 전, 그것도 나 홀로 짝사랑이었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사랑. 그렇기에 지금의 연서는 내게 큰 문제였다.
“하아, 이런 고민을 하다니. 정말 나답지 않잖아.”
‘응? 잠시만. 나답다?’
팬텀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다우면 되는 거야. 팬텀은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서 그곳에 딱 두 줄만을 적었다.
너의 마음을 훔쳐가겠어, 샌님.
-괴토 팬텀-
팬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편지지를 봉투에 넣었다. 팬텀의 손에 들려있던 봉투는 주황색의 빛에 휩싸였고, 그것은 곧 팬텀의 손에서 사라졌다.
한편, 자신의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루미너스는 난데없이 나타난 편지봉투를 찡그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건 뭐지. 설마 함정인가.”
루미너스는 편지봉투를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여 편지봉투를 뜯었다. 안에서 편지지를 꺼내 읽은 루미너스의 왼손이 쥐고 있던 편지봉투를 사정없이 구겼다.
“이 좀도둑 녀석, 별 쓸데없는 말을…!”
두근두근.
루미너스는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박동에 당황하며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댔다. 중간에 가슴이 있는데도 손으로 바로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이 빨라 뛰기 시작해선지 얼굴로 피가 쏠리며 열기가 함께 몰려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 편지지에 무슨 술수를 부려놓은 건가?
루미너스가 의혹에 가득 찬 눈으로 편지지를 내려다보는데 또 다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너의 마음을 훔쳐가겠어, 샌님.
-괴토 팬텀-
두근두근.
심장이 전보다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루미너스는 살을 타고 흘러오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생각했다.
“설마…, 좋아하는 건가? 내가, 좀도둑을?”
말도 안 됐다. 검은 마법사와의 사이만큼이나 안 좋던 게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좋아한다고? 루미너스는 애써 이 감정을 무시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루미너스는 점점 이 감정을 의식하게 되었다. 결국 루미너스는 편지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런 편지를 보냈다는 건 결국 너도 마찬가지라는 거겠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구나, 팬텀.’
루미너스는 자신이 읽고 있던 책에 팬텀의 편지를 꽂아 넣고는, 자신도 편지지와 펜을 꺼내들었다. 그는 편지에 짧게 글귀를 적고는, 그것을 봉투에 담았다. 루미너스가 쥐고 있던 편지봉투가 반짝이더니 그것은 곧 루미너스의 손을 떠났다.
속 시원히 편지를 보내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던 팬텀은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빛 덩어리에 놀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앞에 떨어지는 편지봉투를 받아들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답장을 보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탓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를 꺼내 읽은 팬텀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해볼 테면 해 봐라, 좀도둑.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팬텀은 알아챘다. 이것이 결국에는 긍정의 대답이라는 것을. 팬텀은 편지를 수차례 읽으며 계속 실실 웃음을 흘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유난히 밝게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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