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 그 안에서 키네시스는 멍하니 칠판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칠판에 글을 쓰고 있는 화학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하얗게 빛나는 머리칼과 하늘처럼 푸르른 눈동자를 가진 이는 주위에 있는 남학생들을 모두 오징어로 만들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하얀 마법사, 그였다. 칠판에 글을 쓰던 하얀 마법사는 학생들을 향해 몸을 돌렸고, 곧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아이들의 눈이 심하게 번뜩였다. 그런 학생들을 쭉 훑어보다가 키네시스와 눈이 마주치자 하얀 마법사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고, 키네시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런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대체….’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키네시스의 양손이 꽉 쥐어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하얀 마법사가 교생 선생님으로 학교에 온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그가 학교에 나타나자 그 날부터 학교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여자애들은 모두 그를 만나기 위해 교무실 앞에 진을 치는 것은 물론이었고, 남자애들은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며 하얀 마법사에 대한 탄핵을 실시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학교 안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싸움으로 난리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나 홀로 남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키네시스였다. 사립영재학교의 학생회장인 그는, 유일하게 하얀 마법사에게 탄핵을 들지 않는 남학생이었다. 남들은 그만이 유일하게 하얀 마법사가 온 후에도 인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두근두근.
키네시스는 요 근래 하얀 마법사를 보면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빨개지는 자신의 신체기관 때문에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나 하얀 마법사를 보고 있을 때 그러했다. 물론 그의 외모가 남학생들마저도 넋 놓고 바라보게 할 정도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는 없었지만, 점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유나가 짜증을 내는 빈도가 늘어났다.
“키네시스!”
“으응? 왜, 왜?”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멍한 빈도가 높은 거야! 얼른 일 안 해?”
“미안, 나도 모르게 또 넋을 놨네.”
키네시스가 미소를 짓자,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키네시스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 위해 종이로 눈을 돌렸지만, 그 종이 위에 다시 하얀 마법사의 얼굴이 떠오르자 결국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본 유나는 결국 한숨을 쉬며 키네시스의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자신이 가져갔다. 유나는 서류들을 한 번 쑥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아, 또 남학생들하고 여학생들이 이런 서류를 가져왔네.”
유나가 어떤 서류인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키네시스는 단번에 그것이 하얀 마법사를 탄핵하자는 남학생들과, 그러지 말라는 여학생들의 서명운동이 담긴 서류라는 것을 알아챘다. 유나는 그와 관련 된 서류들을 몇 장 챙기고는 문 쪽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 서류 관련해서 학생주임 선생님하고 애들 만나고 올 테니까 너도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일 좀 해 놔.”
“알았어. 그리고 미안해.”
“칫, 매일 말로만. 미안하면 나중에 뭐라도 사.”
“그래, 알았어. 다음에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어 자칫하면 성의 없어 보일 수 있었지만 유나는 기쁜 얼굴로 문을 나섰다. 그러다가 유나는 누군가와 마주쳤는지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고,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르게 난감한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키네시스는 유나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면서 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학생회실로 들어오는 하얀 마법사를 발견하고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유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학생회실을 보다가 문을 나섰다. 키네시스는 당황한 표정을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를 반겼다.
“선생님이 여기는 웬일이세요?”
“아, 학생주임 선생님이 이 서류를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키네시스는 그에게 서류를 넘겨받다가 그만 그의 손과 작은 접촉이 있었고, 그것에 놀라 서류를 잡았던 손을 놔버렸다. 서류가 땅으로 떨어지자 키네시스는 부랴부랴 서류를 짚어들면서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키네시스 군은 괜찮으신가요?”
키네시스는 그가 이름을 부르자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려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하얀 마법사는 키네시스를 도와 쏟아진 서류를 주웠고,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자 키네시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서류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가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아쉬웠지만 키네시스는 붙잡을 명목이 없었기에 허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를 했다. 하얀 마법사는 그런 그에게 한 번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려 학생회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키네시스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저 선생님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당황시키는 거야.”
괜히 마음 심란하게. 키네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시뻘개진 얼굴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문틈으로 몰래 훔쳐보고 있던 하얀 마법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재밌는 학생이군요. 실험대상으로 괜찮을 거 같아요.”
하얀 마법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 그는 며칠 뒤 실습 기간이 끝났다는 명분으로 영재사립학교를 나갔고, 그가 학교에 나간 지 채 하루도 안 돼서 영재사립학교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얼마 뒤, 신수국제학교에서 이상한 먼지 괴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그것을 몰래 처리하고 다니는 이른바 ‘운명의 전학생’이 나타나고, 도시에는 염동력을 쓰는 이른바 초능력자라고 불리는 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지하철역에서 먼지 괴물들이 나타났고, 그것을 막으러 갔던 키네시스와 하얀 마법사는 재회했지만 키네시스는 그를 기억하지 못 했고, 그를 향했던 마음까지도 기억하지 못 했다.
그 날, 도시의 한복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싱크홀이 발생했고, 키네시스의 가슴 속에도 마치 싱크홀이 발생한 것처럼 하얀 마법사에 대한 연모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대신해서 원수로서의 감정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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