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버지와 트리스탄 님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고, 그 앞에는 피 묻은 검을 들고 있는 진이 있었다. 그런 진의 눈에는 놀람이 가득찼다. 나는 혼란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 진? 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왜, 왜 진이 아버지랑 트리스탄 님을…?”
진은 당황스러워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서, 설희! 그, 그게 아니라….”
“왜 진이 그러고 있어, 왜!”
나는 움켜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진이 무어라 말을 했지만 흥분한 내 귀로는 그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째서 아버지랑 트리스탄 님이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어? 왜 진이 피 묻은 검을 들고 있어? 왜 진이 둘을 죽인 거야? 왜! 어째서!”
“설희, 그게 아니다! 조금만 진정하고 내 말을…!”
“됐어! 더 이상 진의 말 따위 믿지 않을 거야!”
그대로 나는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진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려왔지만, 나는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속으로는 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그렇게 나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진을 향한 증오심 하나로 비화원의 수장이 되었고, 진은 현 다크로드가 되었다. 오직 그를 향한 증오심만이 내 힘의 원천이었고, 비화원이 유지되는 원천이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 복수심마저 허상이었다니….”
나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중얼거렸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진을 향한 복수심이 나를 성장시켰고, 그를 향한 증오심만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게 안개마냥 흩어져버렸다.
잔혹한 진실 앞에서 냉철한 비화원의 수장은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설희’가 나타났다. 나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트리스탄 님, 그리고… 진실을 숨긴 채로 모든 비난과 오해의 화살을 받던 진에게 명목이 없었다.
머리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너무도 명확한 대답을 이끌어냈다. 화해. 모든 오해를 풀고, 지금이라도 예전의 관계로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어, 진.”
이미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도 굳게 닫혀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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