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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60분

은월른 전력 60분 : 손

by 망각. 2016. 3. 26.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였다. 나를 보살펴주는 이는 없었고, 모든 의식주부터 시작해서 몬스터들 사이에서의 생존까지 모든 것을 홀로 터득해나가야 했다. 그런 내게 정령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정령들은 내 유일한 친구였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정령들은 어둠 속에서 나를 밝혀주는 유일한 빛이나 다름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를 만난 것은 내가 한 촌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금빛에 가까운 갈색 머리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나를 바라보는 청안은 청명한 바다 같았다.

그는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이름을 물어왔고, 나는 이름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면 어떠냐고 되물어왔고,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 때부터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항상 혼자기만 했던 내게 그는 상당히 신비로운 존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한 번 지나치고 마는데, 그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왕래가 오갈 때쯤 느닷없이 그가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글쎄?”

사실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이곳으로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에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그는 재차 물어왔다.

혹시 갈 곳이 없으면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 앞에 서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멀뚱히 그 손을 쳐다만 보고 있자 그가 한 번 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나와 함께 가자.”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천천히 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주춤거리며 제대로 그의 손을 잡지 못하자, 그는 덥썩 내 손을 잡으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 여파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잠시간 놀랐지만, 곧 나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그와 맞잡은 손에서 온기가 흘러들어 오는 것만 같았다.

나도 잘 부탁해, 프리드.”

나의 새로운 빛이 생긴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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