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싫어. 싫어. 싫어….
온통 핏빛으로 물든 땅과 하늘. 그곳에 홀로 주저앉아있는 나. 악몽과도 같은 이곳에서 나는 다시 정처 없이 헤매고, 고통 받고, 괴로워했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이것이 꿈일 리 없었다. 그래. 나는 침식에서 벗어나질 못하니까. 이곳에서 지내면서도 항상 이곳이 꿈이길 바랬다. 하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어떤 말을 되뇔 때였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한 여인이 허리를 숙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돌아오지 말랬잖아. 왜 돌아왔어.”
“…당신 누구…?”
밤하늘의 달빛 같은 머리가 인상적인 그녀는, 마치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내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으앗!”
내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고, 내가 양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는 동안 그녀는 당당히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말했다.
“돌아오지 말라는 내 말도 기억 못하고, 아예 나까지 잊어? 완전 건방지잖아!”
“아니,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 때 사라락하는 느낌과 함께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내 피부를 스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온기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고, 곧이어 나는 여인이 나를 껴안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놀라서 굳어있는데 다정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내 귓가에 은은하게 울렸다.
나는 천천히 허공에 있던 팔을 그녀의 등 뒤로 가져갔다. 내 팔이 겹치고 이제 그녀의 등을 껴안으려는 순간, 나는 그만 꿈에서 깨고 말았다.
“헉…, 헉….”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기숙사 내부 풍경이 보였다. 덩달아 멀리서 자고 있는 미림이와 렌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그곳에 얼굴을 파묻고는 소리죽여 울었다.
후회됐다. 어째서 그녀를 떠올리지 못했는지. 왜 그 말에 똑같이 답해주지 못했는지.
“세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방금 전, 꿈속에서 나를 안아주며 속삭이던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그래도 난 널 사랑해, 우리 막내.’
“나도…, 나도 사랑해, 세실.”
숨죽여 울며 나는 그렇게 세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 계속 불렀다. 지쳐 다시 잠에 들기 직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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