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에요!”
미림이가 외치는 말에 하늘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차가운 무언가가 내 얼굴을 두드렸다.
사라락.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사라져버리는 흰 꽃잎은 하늘에서 개화한 것 마냥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침식하고는 다른 포근한 차가움에 나는 기분이 한껏 들떴다. 옆에서는 미림이와 렌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제 정말 겨울이네요…. 점점 더 추워지겠죠?”
“젠장. 수련복은 겨울옷 지급 없다던데. 으윽.”
“이제 실습수련도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조별 훈련은 잘 되가나요?”
“잘 되긴 개뿔. 비앙카는 연습에 아예 안 나오고, 그 꼬맹이는 단검 하나도 제대로 못 잡아. 헬팟이야 헬팟.”
“저흰 리네씨가 정리를 잘 해주시는데…. 덕분에 할 게 없네요.”
“약올리는 거지?”
둘의 대화는 곧 나에게로도 돌아왔다. 미림이가 내게 질문을 던졌고 렌도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미림이의 질문을 덧붙였다.
“안즈 씨. 그건 물어봤어요? 안즈씨네 조만 일리아님하고 두 분 뿐인 거요….”
“맞아. 그거 왜 그런 거래?”
나는 양팔을 손으로 문질러서 열을 내며 답했다.
“학생수 때문이래. 대신 교수랑 한 조로 다닌다고 들었어…. 모든 조들 중 제일 먼저 출발할 거래. 그리고 일리아랑은… 제법 호흡은 잘 맞는 편.”
“흠… 일리아의 능력… 보기보다 뛰어난가 보네?”
“아무래도, 유력한 8대 후보이시잖아요?”
둘의 대화를 듣던 나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런 것 보다… 나한테는….”
목걸이에 담긴 세실리아의 바람. 옥상에서 만났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일리아의 바람은, 세실리아의 바람을 닮았다.
그래서다. 그녀의 바람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그녀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의 호흡이 좋은 것은. 일리아와 함께하고 있으면 마치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세실리아. 나를 처음으로 사랑한다 해준 여인, 그리고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준 나의 어머니. 일리아와 합을 맞추고 있으면 항상 그 때가 떠오른다. 세실과 합을 맞추던 그 때를.
침식에서 떠돌던 나를 받아준 세실과 리치카는 항상 마물에 대한 대처를 해야했다. 물론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실은 바람의 마녀였교, 리치카는 힘의 마녀였으니까. 그 두 명이 한 번 힘을 쓰는 것만으로도 몰려오던 마물들은 한 번에 정리되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욕심을 부릴 때가 있었다. 내가 애취급 하지 말라며 마물에게 달려 나가면 세실과 리치카는 항상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럴 때 항상 달려오던 것은 세실이었다.
“정말이지, 안즈. 위험하다니까.”
“나 애 아니라니까!”
“이렇게 떼쓰는 거 보면 완전 앤데.”
피식 웃으면서 세실이 중얼거렸고 나는 그럼 내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앞서 달려 나갔다. 뒤에서는 세실이 위험하다고 했지만 나는 앞에서 날아오는 마물의 공격을 옆으로 돌아서 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팔에 검을 찔러 넣기까지 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도약까지 해서 마물의 머리에 정통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어때, 세실? 나도 꽤 하….”
의기양양하게 뒤를 돌아보려던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할 말을 잃었다. 내 주변에 있던 마물들이 한꺼번에 나에게로 달려들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려 했을 때는 이미 마물들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제대로 된 방어자세도 취하지 못하고 마물의 공격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주변을 강한 바람이 감쌌고 그것에 막혀 마물들의 공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내가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웃고 있는 세실이 있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위험하다고 했지?”
“세실!”
“안즈, 네가 애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지?”
나는 그녀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지만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은 웃으면서 팔짱을 끼었다.
“그러면 너 혼자서 그 마물들을 처리해 봐.”
“뭐?”
“너 스스로 주변에 있는 마물들을 처리해보라고.”
나는 솔직히 그 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세실의 바람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마물들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 뻔한데 어떻게 처리하라는 것이란 말인가. 이 때쯤에는 초반의 자신감도 거의 사라져 있을 때였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세실이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역시, 한 번의 도움은 필요하겠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그렇게 말한 세실이 나에게로 검지를 뻗었다. 나는 그 손가락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세실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안즈, 저번에 가르쳐준 검술 잊지 않았지?”
“뭐? 무슨 검술….”
“그건 알아서 생각해보고. 자, 시작한다!”
“무, 뭐? 자, 잠깐 세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나를 감쌌던 세실의 바람이 풀렸다. 곧바로 주변에 있던 마물들의 공격이 이어졌고 나는 당황해서 세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세실을 부르는 도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급하게 도약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쳤고 나는 재빨리 위로 도약을 했다.
도약을 하면서 마물들의 공격은 서로에게 부딪혔고 그것을 맞은 마물들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하지만 딱 한 마리, 상대 마물의 공격을 피한 마물 한 마리가 아래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마물은 곧바로 내게 공격을 할 태세였다.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그 때 내 귓가로 세실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잘했어, 안즈.”
그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내 발바닥 아래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나를 강하게 위로 날려보냈다.
“어, 으아아!”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에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명을 지를 때 아래의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내 바로 아래는 마물이 있었고, 세실은 그곳에서 떨어진 곳에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여전히 손에 들려있는 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아까 세실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대로 검을 놓았다. 검은 바람을 타고 회전하면서 날의 방향이 아래로 향하게 됐고, 나는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 끝부분을 잡았다. 그러고는 세실이 준 목걸이를 이용해 바람의 방향을 바꿔 강하게 수직 낙하했다.
검은 정확히 마물의 등을 관통했고, 검을 뽑아내자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내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양손을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누간가가 다가와 나를 품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야아, 우리 안즈 다 컸네~”
“으윽, 떠, 떨어져, 세실!”
“왜애~ 난 우리 안즈가 무지 자랑스러워서 칭찬해주고 싶은데.”
그 후로부터 나는 가끔씩 세실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물을 잡으며 훈련했다. 그리고 세실의 바람을 탈 때마다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지금 일리아와 훈련할 때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것보다는 뭐?”
나는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렌과 미림이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답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자 렌은 씨익 웃으면서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에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너, 혹시 일리아 좋아하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나는 손으로 렌의 얼굴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미림이는 그런 우리를 말렸고 렌은 계속해서 나를 놀렸다. 나는 렌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다가 바람이 옆을 스쳐지나가자 그것을 멈추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겨울의 차가운, 그러면서도 포근한 바람이 내 머리를 헝클이며 지나쳤다. 나는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미소 띤 얼굴로 맞으며 속으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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