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은월이 형이랑 결혼할래!”
“…응?”
너무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보같이 반문했다. 그러자 내 앞에 서있는 아이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재차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 은월이 형이랑 결혼할 거라고!”
“하하, 에, 에반? 형이 남자라는 건 알고 있지?”
나는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물었고, 에반은 너무나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남자와 남자가 결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응, 왜?”
“왜냐니…, 그야….”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 아니야?”
“응, 그게 맞긴 한데….”
“그런데 왜 남자랑 남자는 결혼하면 안 돼?”
나는 이 시련을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순수한 어린이에게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남녀가 함께 있어야하며, 합법적으로 짝인 것을 공표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에반’이 ‘나’와 결혼을 하겠다고 발언한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미소 뒤에 숨기려고 노력하며 에반을 달랬다.
“응, 사실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결혼은 성인과 성인이 하는 거거든. 그래서 아직 에반은 결혼할 수가 없어. 형도 아직 성인이 아니고.”
“으음, 그러면 커서 나랑 결혼하는 거야. 약속!”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끝에 가서는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어린아이에게 나는 한 번은 맞춰주자 싶어서 똑같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 채로.
그로부터 10년이 흐르고 나는 성인이 되었고, 에반은 고등학생 3학년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부터는 만나는 일이 드물었고, 어쩌다 한 번 만나게 되더라도 어릴 때처럼 반기는 기색이 없어서 이제는 관계가 꽤나 소원해졌다고 느낄 때였다. 어느 겨울, 전화 한 통이 올 때까지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보세요? 은월 형. 저 기억해요?”
변성기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소년 특유의 목소리가 전화 반대편에서 들렸다. 그리고 나는 단번에 그 주인공을 알아차렸다.
“에반?”
“네, 맞아요. 저에요.”
“아아, 그러고 보니 지난 달이 수능이었구나.”
“네, 그래서 전화 드린 거예요. 그동안 수시 마무리 짓느라 바빴거든요. 은월 형 언제 시간 돼요? 오랜만에 보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내가 이번 주말에 시간 비니까 그 때 보자. 응, 그래. 그럼 거기서 보자.”
그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재회 정도로만 여겼는데, 오랜만에 만난 에반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혼인계약서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형, 기억하시죠? 성인 되면 형이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거요. 저 이제 일주일 뒤면 성인이에요. 그러니까 형, 결혼해요, 우리.”
당연하게도 나는 당황하여 손사래까지 치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잠시만, 에반. 그, 그건 그냥 어릴 때 한 약속….”
“그래서 약속을 안 지키시겠다는 거예요? 은월 형은 시간이 오래 지났으면 약속을 깨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니,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이제 됐잖아요. 저도 이제 곧 성인이에요. 문제될 거 없잖아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나는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나마 외쳤다.
‘제발 아직은 아이인 채로 있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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