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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60분

안즈 전력 60분 : 동병상련

by 망각. 2016. 7. 23.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결투장 위에는 파란 머리의 소년과 초록 머리의 소년이 서로를 마주본 채로 섰다. 파란 머리 소년의 손에는 결투용이긴 해도 검이 들려있었고, 초록 머리의 소년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록 머리의 소년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것에 자극받아서인지 파란 머리의 소년도 짐짓 여유로운 척을 했다.

안즈 씨, 어깨에 힘 들어간 거 다 보여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말투에 안즈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경직된 어깨를 풀었다.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여유롭게 지켜보던 초록 머리 소년, 이프가 씨익 미소 지었다.

긴장하게 눈에 선하네요, 안즈 씨. 이번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건 아니죠?”

빠직.

저 녀석, 반드시 이겨서 입 꿰매고 말 거야.’

안즈는 한 손에 검을 고쳐 쥐고 이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이프도 포즈를 바로하고 결투를 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히도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이프였다. 이프의 손 주위로 형체가 잡히지 않은 기가 모여들었고, 그는 곧이곧대로 그것을 안즈한테로 날렸다. 안즈는 옆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고 곧바로 뒤로 도약을 해서 주먹을 날리는 이프를 피했다.

바닥에 있는 타일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지만 그것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프가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역시 빠져나가는 거 하나는 일품이네요. 언제쯤 저한테 공격하실 거예요?”

안 그래도 이제 막 하려던 참이었어.”

그렇게 대꾸하며 안즈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속도를 올려주었고, 그는 그 힘 그대로 도약해서 아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안즈는 그대로 칼을 휘둘렀지만 이프의 손에 간단히 막혔고, 그것을 예상한 것처럼 곧바로 옆으로 한 바퀴 돌면서 재차 칼을 휘둘렀다. 물론 그것도 막혔다.

서로에게 유효타격을 주지 못하는 공방전이 그 후로 수십 번이 이어졌다. 안즈가 검을 휘두르면 그것들은 모두 이프에게 막혔고, 이프가 주먹을 내지르면 안즈가 피하거나 검으로 흘려보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피해를 입는 것은 결투장이었으나 이 결투장은 계속 원래의 상태로 복구되었다.

하아, 하아.”

허억, 허억.”

결국 거리를 둔 채로 숨을 몰아쉬던 그 때, 이프가 나지막이 안즈에게 말했다.

세실이 리치카 님과 싸울 때도 맨날 이랬습니까?”

또 다시 꺼내지는 민감한 주제에 안즈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이 결투는 둘의 명예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3대 힘 리치카와 7대 바람 세실리아의 명예를 위해 시작된 싸움이었다.

그랬기에 싸움이 마무리 되지 않은 이 때 재차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안즈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즈가 노려보자 이프는 두 손을 들며 사과했다.

아아, 미안해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리치카 님과 세실의 결투가 어땠는지가 궁금했던 거뿐이에요.”


안즈는 그제야 노려보던 눈을 풀며 검 끝을 땅에 대었다. 이프도 마찬가지로 자리에 주저앉으며 사색에 잠긴 눈이 되었다. 분명 자신들의 소중한 이의 명예를 위해 시작된 결투였는데 끝에 가서 남은 것은 그들을 향한 자신들의 그리움뿐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들의 아물어진 상처가 다시 벌어져버린 날, 그들은 결국 결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