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지나가고, 여느 때처럼 찾아온 여름이지만 다락방에서는 이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었다.
“안즈 씨, 렌 씨 괜찮아요?”
“넌 지금 이게 괜찮아 보여?”
미림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지만 대꾸하는 렌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그만큼 렌은 지금 무지 힘들어하고 있었다. 애초에 켈른 출신인 그에게 이런 더위는 쥐약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워서… 죽을 거 같아….”
침식은 춥다. 온기뿐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싸한 곳이었기에 안즈는 지독한 추위는 느껴봤어도 이런 더위는 익숙지 않았다. 렌은 방바닥에 누운 채로 고개만 안즈에게 돌리며 물었다.
“야, 안즈. 너 그 아티팩트로 어떻게 좀 안 되냐?”
“…이 상태로 그거 쓰면 방에 있는 물건 다 날아갈 걸.”
“으아아, 진짜 완전 덥네.”
입으로 계속 투덜거리는 렌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미림이가 위로했다.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렌은 질린다는 듯이 미림이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넌 이 상황에서조차 그런 옷을 입고 있냐. 너도 참 대단하다.”
미림이는 혼자 더위를 타지 않는 것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까지 오는 티에다가 가디건을 걸친 상태였다. 심지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렌과 안즈하고는 다르게 땀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 미림이는 아무 대꾸 없이 웃기만 했고, 그런 미림이를 렌은 아무 말 없이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난 됐으니까 저기 가서 안즈한테나 부채질 좀 해 줘. 쟤 저러다 죽겠다.”
아닌 게 아니라 렌만큼이나 침대에 누워있는 안즈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심한 거 같았다. 미림이는 안즈에게 다가가 부채질을 해주려다말고 깜짝 놀라며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안즈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즈 씨?”
미림이가 안즈를 부르자마자 안즈의 감긴 눈이 괴로운 듯 찡그려졌고, 얼굴에는 홍조가 올라왔다. 미림이는 손수건으로 안즈의 이마를 닦다말고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고 곧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을 떼어냈다.
“아, 안즈 씨. 괜찮아요?”
“뭐야? 왜 그래?”
녹아서 눌러 붙은 사탕마냥 땅바닥에만 붙어있던 렌이 미림이의 비명에 단번에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미림이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안즈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안즈를 불렀다.
“야, 야, 안즈! 정신 차려!”
“레, 렌 씨! 환자를 그렇게 흔드시면!”
하지만 렌은 미림이가 채 말을 끝내기도전에 안즈에게서 손을 떼며 욕실로 달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대야에 물을 담고 수건을 챙겨서 미림이에게로 가져왔다.
“미림아, 네가 나보단 간호 잘 할 테니까 간호 좀 해주고 있어봐. 보건실 가서 약 가져올게.”
“아, 네!”
렌은 대야를 내려놓은 다음 급히 방밖으로 뛰쳐나갔고, 미림이는 수건에 물을 묻히고 꽉 쥐어 짠 다음 잘 접어서 안즈의 이마 위에 올려놨다. 손수건으로 수시로 땀을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다음 미림이는 안즈를 향해 살살 부채질을 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렌이 세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그의 품에는 엄청난 수의 약들이 종류별로 안겨있었다. 그는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지 심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헉헉…, 미림아. 보건실에 아무도 없어서…, 일단 아무거나 다…, 가져와봤는데…, 이거면…, 되냐?”
“아, 네.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요.”
미림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렌이 가져온 약들 중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 렌은 컵에다가 물을 따라왔고, 미림이는 안즈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몇 차례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자 안즈의 눈이 살짝 뜨여졌지만 초점이 잡히지는 않았다. 미림이는 안즈의 눈이 다시 감기기 전에 얼른 약과 물컵을 내밀며 말했다.
“안즈 씨, 일단 이 약 드시고 나서 주무세요.”
안즈는 눈이 계속 감겼다 뜨여졌다를 반복하면서도 입을 벙긋거렸다. 그 뜻을 이해한 미림이는 안즈의 입으로 약을 밀어 넣고, 물컵을 조금씩 기울여 물을 흘러 넣었다. 물이 입 옆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안즈는 물과 함께 약을 삼켰고, 물을 다 마시자마자 다시 눈을 감았다.
“…이것만 해도 괜찮은 거야?”
“네. 해열제랑 진통제를 먹였으니까 아마 밤까지는 푹 주무시고 멀쩡하게 일어나실 거예요.”
“휴우, 깜짝 놀랐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렌을 미림이는 웃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다시 안즈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부채질을 했다. 그것을 보던 렌은 미림이와 마찬가지로 안즈 옆에 앉아서 수시로 물수건을 갈아주거나 부채질을 하는 등으로 간호했고,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그들은 안즈의 침대 옆에 몸을 기댄 채로 잠에 들었다.
“으윽….”
낮은 신음을 흘리며 눈살을 찌푸린 안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몇 차례 눈을 깜빡이던 안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있던 안즈는 밤의 차가운 기온과 식은땀으로 인해 젖은 몸이 으슬으슬 떨리자 주변을 돌아보았고, 곧 자신의 옆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는 미림이와 렌을 발견했다.
“아….”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떠올린 안즈는 복잡한 표정으로 미림이와 렌을 내려다보았고, 곧이어 방긋 미소 지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빼서 창가로 걸어갔다. 그는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고, 미림이와 렌에 침대에 있는 이불을 가져와서 그들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땀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이불보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욕실로 향했다. 그 일련의 행동들이 혹여나 둘의 잠을 방해할까봐 모두 조심스러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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