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60분

팬텀루미 전력 100분 : 꿈

망각. 2016. 3. 26. 13:31

샌님샌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나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청명한 하늘이었고그 다음에 눈에 띤 것은 익숙한 한 얼굴이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에사람을 매료시키는 보랏빛 눈동자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너무 닮아있었다아니닮은 정도가 아니었다그냥 그였다거기까지 인지한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내가 상체를 들어 올리자 너는 얼른 몸을 뒤로 뺐다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너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일어나자마자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야그렇게 내가 보기 싫은가 보지?”

너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물어왔다.

아니그게 아니라너는 분명.”

너는 분명 죽었잖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나는 그제야 이곳이 낯선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여긴?”

글쎄나도 잘 모르겠는 걸나도 일어나보니 여기였거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느 동산 위였는데맹세코 나는 이런 동산을 봐 본 적이 없었다형형색색의 꽃들이 수두룩하게 피어있는 동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역 따위는 본 적도들어 본 적도 없었다하지만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꿈이구나.

네가 있는 시점에서 알아챘어야 했다이건 꿈이다그렇기 때문에 너를 볼 수도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런 동산에도 올 수 있었던 것이다잠에서 깨기만 하면 된다그러니까.

와락.

샌님?”

보고 싶었다.”

너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내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너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세상에설마 샌님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역시 너는 모르는구나이것이 꿈인지현실에서 네가 어떻게 됐는지그렇다면그렇다면 몰라도 돼아니그냥 알지 마그저 모르는 채로 내 곁에 있어 줘부탁이야.

어라샌님울어?”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어디 봐봐!”

품에서 나를 놓으면서 내 얼굴을 보려는 너를 막기 위해 더 강하게 너를 끌어안으며 목이 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그냥 이렇게 안아 줘제발.”

너는 살짝 망설이는 듯싶다가 결국 다시 내 등을 토닥였다한참을 그렇게 껴안고만 있자 네가 입을 열었다.

샌님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싫은가?”

아니그게 아니라이제 내 얼굴 볼 시간 별로 없을 텐데 보고 싶지 않아?”

!”

나는 얼른 너의 품에서 떨어지며 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씁쓸한 미소가 걸려있는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내 눈이 안개가 낀 것처럼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내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었구나이것이 꿈이라는 것도현실에서 네가 어떻게 됐는지도내가 잠에서 깨면 이별이라는 것도.

샌님울지 마.”

.”

울지 말라니까.”

좀도둑.”

?”

손 잡아줘.”

너의 손이 천천히 내 손을 감싼다꿈인 걸 아는데도 너의 손에는 온기가 담겨있었다그 손을 잡고 있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아줘.”

이번에도 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줬다나는 눈에 다시 차오르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너를 꽉 안았다역시 따뜻하다분명히 꿈일 텐데 네 손도네 품 안도 모두 따뜻했다.

이제 그만 갈 때가 된 거 같아샌님.”

한참을 그렇게 안고만 있었는데너는 매정하게 말했다나는 천천히 너의 품에서 떨어졌다아련한 미소를 짓는 네 얼굴이 보였다.

가야만 하는 건가.”

아직 메이플 월드에는 샌님이 필요하니까.”

.”

작별인사야샌님.”

그러면서 너는 다시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잠시간 그렇게 안던 너는곧 자리에서 일어서며 몸을 돌렸다그리고는 멀어지는 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팬텀.”

너는 걷다말고 우뚝 멈춰 섰다나는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해.”

너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왔다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는 듯이 웃으며 너는 대답했다.

나도 그래루미너스.”

그것을 끝으로 나는 잠에서 깨었다방금 전까지 있던 끝없는 동산과청명한 하늘은 사라지고 내 방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깼구나꿈에서 돌아왔구나그런데.

나는 한 쪽 팔로는 눈을 가리고다른 한 쪽 손으로는 심장을 움켜쥐었다꿈에서 돌아왔는데가슴이 시려왔다나는 꿈에서 했던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좋아해팬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