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60분

안즈 전력 60분 : 추억 & 후회

망각. 2016. 6. 25. 19:24

가장 좋았던 분이요?”

대기실처럼 보이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한 쪽은 카메라를 마주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카메라 뒤에서 종이와 펜을 쥔 채로 앞에 있는 이를 쳐다보았다. 카메라 앞에 있는 하늘빛의 머리칼을 가진 소년, 안즈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곧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다양해서 대답을 못 하겠어요.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던 장면들은 하나같이 다 재밌었거든요. 그 중에서도 한 명만 고르기에는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 드릴게요. 촬영하면서 가장 후회가 든 장면은 무엇인가요?”

안즈는 이번에도 살짝 대답하기를 망설이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회가 되는 일도 엄청 많았어요. 특히 제가 검을 사용해야하는 씬이 많았으니까 여러모로 위험했는데, 상대 배역 분들이 저 때문에 다치셨을 때가 제일 죄송스러웠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그리고 또.”

몇 차례 문답이 오간 뒤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상대방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문밖으로 나갔고, 뒤이어서 렌이 들어왔다. 그는 설렁설렁 걸음을 옮겨 카메라 맞은편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질문이 들어왔다.

? 가장 좋았던 사람? 별로 없는데? , 안즈랑 미림이는 괜찮았던 거 같아. 걔네 둘이랑 같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재밌었는데. 싸우거나, 검 쓰는 장면이라든가, 아니면 선도부 피해서 도망치거나 했을 때라든가. ? 레노아? 걘 당연히 열외지. 걜 여기 왜 집어넣어.”

재밌다는 듯이 킬킬거리던 렌에게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후회되는 일은 없었나요?”

그는 단번에 인상을 찡그리며 거침없이 내뱉었다.

당연히 있지. 지금 이 배역을 맡은 게 엄청 후회 돼. 아니, 물론 나하고 성격이나 그런 게 잘 맞긴 한데 이 배역 하나 맡았다고 욕을 얼마나 들었는 줄 알아? 아니, 난 연기를 했을 뿐인데 왜 나한테 욕 하냐고. 게다가 왜 여기서까지 레노아랑 남매 역할인 거야? 안 그래도 집에서 매번 티격태격하는데.”

그 후로도 계속해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작가는진땀을 뺐다. 마침내 렌이 좀 진정하자 그는 질문을 이어갔고, 문답이 끝나자 렌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무런 인사도 없이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는 렌에게 살짝 목례를 하며 미림이가 들어왔고, 렌도 그런 그의 인사에 화답하면서 그를 지나쳤다. 작가에게도 살짝 고개를 끄덕인 미림이는 조신하게 의자에 앉았다. 작가가 안즈와 렌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미림이에게 던졌다.

가장 좋은 분이요?”

미림이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역시 안즈 씨랑 렌 씨 아닐까요? 비단 배역 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요. 정말 그 두 분 덕분에 촬영이 즐거웠고, 편했던 거 같아요. 가장 허물없이 지낸 분들이기도 하고요.”

그럼 후회되는 일은 없었나요?”

으음, 후회되는 일은 없었던 거 같아요. , 한 가지 있었네요. 좀 더 다른 분들을 챙겨드리지 못한 거. 그게 정말 아쉬워요.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좀 더 많이 챙겨드렸을 텐데.”

마찬가지로 미림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작가는 펜 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다시 펜 촉을 종이에 가져다대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이 촬영을 하면서 재밌는 일도 생겼고, 후회되는 일도 있었는데 가장 추억이 되는 때는 언제인가요?”

미림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흘러나왔다. 미림이의 대답을 받아 적은 작가는 미림이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촬영하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미림 씨. 이제 올라가 봐요.”

작가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미림이는 방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작가에게 인사를 하면서 방을 나섰다. 방에 홀로 남은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쥐여있는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곧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책상에 종이를 내려놓은 채로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남지 않은 방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장 추억으로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안즈 : 으음, 여기서 많은 분들과 함께 촬영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정말, 아니, 정말이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정도로 제게는 소중한 촬영이었어요.

 : , 말은 이렇게 했어도 이 촬영에 참여한 게 다 추억이지. 욕이야 왕창 먹었지만 그게 뭐 대수야? 이런 촬영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욕도 계속 들을 수 있어.

미림 : 이 촬영에 참여해서 여기 있는 분들을 만나서 함께 웃고 울면서 촬영을 했던 일들, 그 전부가 가장 추억으로 남아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아쉬워요. 오늘이 끝나면 지금까지처럼 다른 분들을 만나기 어려울 테니까요.